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 말 왜구의 침입 (문단 편집) === 잠잠해지는 왜구와 회유 작전 === 거의 절정으로 치닿는 듯 했던 왜구의 공격은 이 무렵부터 1371년 즈음까지는 '''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''' 조금 소강 상태가 되었다. 1368년은 간만에 왜구의 침입이 없었던 해였다. 다만 왜구 방지 대책 문제로 고려가 [[일본]]에 보낸 사신 김일(金逸)은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와야만 했다. 한편 왜구의 침입이 너무 잦다 보니 고려 조정에서는 이들을 무력으로 토벌하는 것 뿐만 아니라 회유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, 조정에서는 이러한 뜻을 가진 왜구들을 거제현(巨濟縣)과 남해현(南海縣) 등지에 살게 해 주었으나 1369년 7월 이 왜구들은 다시 돌아가 버렸고, 11월에는 다시 영주(寧州)·온수(溫水)·예산(禮山)·면주(沔州)의 조운선을 공격해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